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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아이들: 자아상과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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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짜 : 12-12-18 14:37
  • 조회 : 2,6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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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아이들:자아상과 외모편


                                                                                      김진관(김진관 정신건강 클리닉)




십대는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인 격변의 시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몰입하는 시기라서 자아정체감 형성의 시기라고 합니다. 정신적인 변화와 갈등이 감당하기 힘든 소용돌이 같아서 질풍노도의 시기로도 표현이 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청소년들이 혼란스러움을 겪으면서 오직 자신 만이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느끼기 쉽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 신념, 또는 고통을 자유롭게 나눌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혼란과 함께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구는 역시 부모입니다.



청소년기는 한 인격의 기초공사가 완성되는 시기인 만큼 행여 비뚤어질까봐 부모는 노심초사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뜻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극대화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대해 몸살을 앓는 부모들은 나름대로 해법 찾기에 골몰하지만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주면 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야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대의 아이들의 속마음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일 것입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상황은 십대의 아이가 혼자 마음 속에 몸살을 앓으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착하고 의젓한 특징을 보입니다. 자립심, 책임감과 함께 보다 나은 인품을 스스로 갖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척, 자신있는 척 하면서 혼자 속앓이를 하는 것은 십대에게는 분명 가혹한 일입니다. 혹시 부모를 믿지 못해서 말 못하는 것은 아닌지도 염려됩니다. 또는 부모를 자기가 돌봐야 한다는 부담을 혼자 지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겠습니다. 마냥 기특하다고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가장 난해한 경우는 자신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만 속앓이를 할 뿐 의식에서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지각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즉 상처가 있어도 있는 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이나 상처는 종종 그렇게 개인의 무의식 안에 깊이 숨어 버립니다. 이런 경우에 여러 종류의 심리장애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십대의 아이들은 신체와 호르몬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마음과 정신의 변화도 따라오고 따라서 정신적 성장이 필수적인 과제로 주어져 있는 셈입니다. 신체적 특징이 자아상의 형성에 있어서, 즉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 느낌에 있어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히 십대는 좀 더 예민해서, 자신이 언제 어디서나 무대 위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에 젖어 있는 시기입니다. 항상 ‘관중들’이 날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듯이 느끼고 행동을 하는 것이 정상적이며 건강한 모습입니다. 자녀가 신체적 매력에 적당한 관심을 보일 때 부모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겠습니다. 아이가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반면에 십대의 자녀가 외모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 우려가 됩니다. 아마도 인격체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다른 가치들을 행여 가벼이여길까 하는 염려겠지요. 아무리 외모가 경쟁력인 사회에 살고 있다지만, 그래도 인격의 성장이나 성취에 더욱 무게를 두는 것은 언제나 타당합니다. 성형외과 의사도 수술 후에는 몸매 관리보다 자신감에 대해 조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각같은 얼굴보다는 자신있는 미소가 더욱 큰 매력을 발산합니다.



외모에 대한 예민한 관심이 올바른 통로를 찾지 못해 크게 탈이 난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거식증(Anorexia Nervosa)입니다. 지나친 다이어트가 거식증으로 발전하는 사례가 10대 후반의 여성에게서 종종 발견됩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단순히 외모지상주의의 극단적 표현으로만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정신분석적인 입장에서 보는 거식증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 내재된 갈등에서 답을 찾기도 합니다. 엄마의 공감이 적고, 과잉 보호와 통제가 많을 때 딸은 자율성이 부족해지고 자기 조절 능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신체와 섭식행동을 지나치게 통제함으로써 자기 통제감과 독립심에 대한 갈증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갈등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섭식에 대한 지나친 통제는 엄마로부터의 분리 및 개별화 그리고 독립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의미 또한 지닙니다. 다시 말해서 양가감정이며 자기 자신도 쉽게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반응입니다. 엄마의 자녀에 대한 보호 및 애정이 가장 함축적으로 녹아 있는 장면이 음식 먹이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해가 됩니다. 자기 만의 뜻을 찾아 독립을 원하는 아이도 ‘부모를 고문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독립이 두려워서 더욱 극진한 보호를 원하는 아이 역시 입맛을 잃고 시름시름 앓으면 부모의 손길이 자기에게로 집중될 게 뻔합니다. 섭식 행동에는 이렇듯 외모에 대한 매력 추구 이상의 뿌리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엄마가 건강을 아끼라 조언하고 해치지 말아라 혼내는 것으로 그렇게 내면에 깊이 숨어 있는 갈등이 해결될 리가 만무합니다.



반대로 자녀가, 특히 여자가, 외모에 너무 관심이 없다면 어떨까요. 옷은 선머슴처럼 입고 화장은 질색하며 악세사리들 마저도 외면한다면요. 예민한 부모라면 웃음기가 사라질 만한 일입니다. 거식증은 내면의 갈등을 외부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면, 외모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경우는 여성성에 대한 내면의 갈등을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묻어버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고 게다가 주위에서도 그렇게 큰 문제로 인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여성성을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낮아진 자존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도 볼 수 있습니다.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가 성격 좋다는 평을 종종 듣습니다만 그 여성은 그런 칭찬에 뼈 속 깊이 쓸쓸함을 느낄 지도 모릅니다.



여성의 예쁜 외모 못지 않게 큰 이슈가 되는 것이 남자의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한 갈망입니다. 천상 수컷이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울퉁불퉁한 근육, 호리호리한 몸매, 큰 키, 호탕한 성격과 더불어 적당한 배짱과 심지어 유머까지 온갖 능력치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모두 남성성에 포함이 되며 이는 노년기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갈증을 완벽하게 채우는 사람은 없지만, 동시에 감사한 것은 이 갈증이 꿈꾸고 경쟁하면서 발전해가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청소년기에 남성성을 다쳐서 위축되는 경우에는 훨씬 더 각별한 관심과 치유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에 희생된 아이들 중에는 자신의 희생을 남성적 매력의 결여로 연결시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럴 경우 정신적 피해가 심각해집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쉽게 호소하고 보호를 청하는 편이지만 남성은 다친 남성성 조차도 남자답게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섭니다. 울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끌어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크게 긴장하고 있거나 혹은 크게 화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어쩌면 자신들 조차 속여서 이미 모른 척 하는 데 익숙해져 있을 지도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든 문제 행동을 보이는 청소년들은 의식적으로든 또는 무의식적으로든 관심을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괜찮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고 애정과 보호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갈증일 때 내면에 고이고 쌓여서 서서히 정서적으로 부패하는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아이들, 급격하게 체중이 증가하거나 감소한 아이들, 시도 때도 없이 화내는 아이들, 또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너무 부당하게도 낮게 평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아이들은 자기 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으며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갈망합니다.



부모가 친구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관심을 가져주면 긍정적인 자기상을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아이들 세대에 유행하는 관심사라면 무엇이든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교훈을 불어넣기 전에 우선적으로 그들이 어떤 시각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아야 합니다. 격려와 교육은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굳이 길을 제시해주지 않아도 함께 바라봐주고 뒤에서 받쳐주면 아이들은 결코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끌어가려 할 경우에는 아이들이 정도를 걷는 선택을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청소년기에 확립하는 자아상의 구성요소는 외모에 대한 것 뿐 아니라 가치관, 친밀감, 사회성, 성취감, 지능, 정서지능, 효능감, 인생의 목표 등등 다양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뜻대로 아이를 빨리 리드하고 싶은 욕구를 최대한 자제하고 차분히 그리고 끝까지 아이들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상당한 지식과 함께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다행인 것은 부모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입니다. 귀를 열고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단단한 중심축이 되어 줍니다.



[출처] 김진관 심리칼럼(http://blog.aladin.co.kr/aus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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